가람(Garam)


  조헤연(2006-05-10 16:39:16, Hit : 2828, Vote : 268
 시험을 마치고..





왠지 돌아갈 수 없는, 긴 강을 건넌 느낌이다.
많은 일이 있었고, 또 그 만큼 많이 성숙했지만 난 아마 살면서, 재수했던 일년을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잃은 것도 많고 또한 얻은 것도 많기에.


처음 재수를 결심하게 된 것은, 아주 작은 계기였다.
다 군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입시 실패를 예감했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도 몰랐다.
막연히 작곡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고, 화성학을 약간 배우고 시험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테크닉이니, 곡의 내용이니를 떠나서 곡을 써본 적도 없이 시험봤다. 내가 곡을 써본 적도 없다는것 조차도 시험을 보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 대학에 떨어질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참 무식했다.


수원대학교에서 곡을 어떻게 쓰는건지도 몰라서 답답해, 곡도 안쓰고 잠만 자다가 나왔을때는 차마 아버지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아니, '떨어졌어, 떨어졌어!' 소리지르면서 옆에서 누가 나눠주는 팜플렛을 대충 주머니에 넣고 뛰어가는데 아버지는 내 마음을 알아채셨나보다. 말이 없으셨다.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때는 반장이고, 담임선생님이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하시는데 대체 뭐라고 해야하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내 주위에는 나한테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콧대만 높고 가진것도 없이 고개만 쳐든 모습은 목 아래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허풍떠는 타조랑 다를 것이 없었다. 타조와 내가 다른 것은, 타조는 힘이 세지만 나는 쥐뿔도 없다는거다.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것을 알고,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결국 내가 할수 있었던건 낙천적인 척 하면서 생글생글 웃는거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가 뭔가 할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제일 먼저 내 허풍을 알아차린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래, 어디든 좋다. 초당대학교니, 나사렛대학교니 받아주면 가지 뭐! 하고 큰소리 쳐대는 모습이 스스로도 한심했건만 어머니는 조용히 재수를 결정하셨다. 그때 생각난게 '가람 작곡 연구원' 팜플렛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팜플렛을 나눠준 분이 청음선생님이었다.


아무도 없는 데서 눈물이나 빼고 있을때, 부모님은 실로 경이로운 속도로 재수를 결정하시고 학원에 전화를 넣으시고. 졸업식이 끝나고 나서 점심만 먹고 학원엘 데려가시더라. 그 추진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대학 발표도 채 안났을때 학원엘 들어와서, 재수생으로는 정말 처음으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것만 같아서 기대가 많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든 창작에는 노력과 기초가 있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기초 없는 천재는 없었고, 나는 천재를 꿈꾸기 이전에 기초가 없었다. 하다못해 화성악부터 다시 배우는 피나는 노력. 을 해야했지만, 노력하는거 참 어렵더라. 결국 일주일 내내 학원을 나오도록 조치가 떨어질 정도로 게으르고, 정말 공부도 안했다. 부끄럽지만 수능 성적, 2005년 입시 때보다 전 과목이 1등급씩 떨어져, 2006년때는 결국 7등급짜리로 도배가 되었고 외국어 성적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점수다. 연세대학교 떨어질만도 하다.


곡도 지지리 못썼다. 사보를 못하는건 물론이고, 제 멋대로 곡조를 완성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곡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년 새에 참 많은게 변했다. 지금은 사보하면, 입이 떡 벌어지게 할 수도 있고 나름대로 곡도 잘 쓴다고 생각한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겉보기에는 참 요조스럽다. 숙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부모님 말 잘 듣고 한 공부 했을것 같이 생겼다. 실제로는 입에서는 차마 말할 수도 없는 욕이 튀어나올 때도 많고 다른사람 생각도 안한다. 성격이 개차반이다. 그래도 어떻게 반장도 해먹고, 그럭저럭 고등학교를 보낸 것 같다. 그런데 재수 1년 한번 해보니까, 개차반이 사람되더라. 이제 당당한 사람이다. 나름대로 눈치도 볼줄 알고, 사람들과 대차게 어울릴 줄도 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낮추고, 겸손을 배운 것 같다.


사는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우왕좌왕 좌충우돌처럼 여기저기 부딪히며, 짠짠한 미소나 지으며 살다가 잔뜩 깨져가면서 1년 공부하고 나니 이제야 내가 사람이 된 것 같다. 가군에는 경원대학교를 쓰고, 나군에는 연세대학교를 넣었다. 그래, 솔직히 연세대학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합격 가능성은 참 낮았다. 나는 화성은 지지리도 못하는데, 연세대학교가 화성을 안본다. 참 좋은 학교다. 청음이나 곡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수능 성적이 워낙 낮아서 기대를 안했지만, 그래도 도전도 안해보고 높은 곳을 바라보며 손만 빨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결국 연세대학교는 떨어졌다. 뭔가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수능점수가 개차반인데도 경원대학교에서는 합격발표가 짠하고 나더라. 열심히 노력한 댓가가 돌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높은 수준의 대학교에 부딪혀봐서, 결국 합격은 못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연세대학교를 위해 바짝 긴장하며 입시 준비한 것만으로도 얻은게 있다. 내가 연세대학교에 원서를 넣지 않았다면 곡을 이정도의 수준으로 쓸 수 있었겠는가. 4성 청음을 받아적으면서, 화성을 채워넣으려고 기를 쓰고 연구한 세월은 그냥 지나간게 아니다. 스스로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는걸 공부하면서 느꼈었다. 결국은 떨어졌다지만, 세속적인 말로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머릿속에 새기려고 한다.


물론 입시의 결과는 중요하다. 실제로 함께 1년을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한양대학교에도 붙고 연세대학교에도 붙었다. 그들은, 노력했다. 나처럼 게으름 부리다가 나중에만 열심히 해서 겨우 곡이나 쓰게 된게 아니라, 정말로 성적도 신경쓰고 피아노도 열심히 연습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부족한게 있었다. 어떻게 설명되든간에 그들의 노력보다 나의 노력이 숭고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뒹굴거리던 때에 열심히 학원다녔던 그들의 세월이 결과에 의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함께 1년을 보내서 그런걸까, 막판에 함께 뼈빠지게 곡썼는데 연세대 합격 못한건 아직도 아쉽다.)


그러나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1년동안,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내가 경원대학교를 시험보고, 조심스럽게 '붙을 것 같다.' 며 웃었던 것은, 내가 공부한 시간들을 증명한다. 하지만, 연세대학교를 보고 나오면서 머리 싸매고 '모르겠어요' 라고 말했을 때, 분명히 나는 불합격의 조짐을 읽었던 것일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언젠가 연세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했던 세월들. 그 흔적들을 발견하고, 또 되새기는 일을 게흘리 하지 않는다면, 나는 또 다른 형태의 보상을 받으리라.


결과는 과정보다 먼저 일어날 수가 없다. 하나하나 쌓이고, 또 쌓이고 그 견고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타나는거다. 연세대학교를 떨어졌을때, 내심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죽고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자신의 능력이 이것도 안되는건가, 싶었다. 가족들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방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몇일을 침울해 하고 나서야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하느님이 인도하신거다. 더 나에게 어울리고, 더 긍정적인 삶을 위해 인도하신거다. 라고 위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의 노력이 부족했으리라. 한숨에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을 타일렀다. 그리고, 연세대학교를 위해서 노력한 스스로의 실력이 언젠가 다른 결과로 나타나리라고 위안했다.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불합격이, 내탓이 아닌 다른사람의 책임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세상을 비틀어진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심할때는, '걘 될줄 알았어!' 라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나는 안될거라고 생각했단 말야?!' 라면서 불을 토하고 있었다. 정말 한심하구나.


그렇지만 만약에 연세대학교에 원서만 넣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스스로를 자책하고 슬퍼하지도 않았을거다. 하지만, 또한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을 갖지도 못했을 것이며 물론 경원대학교 시험을 본 후 그렇게 합격을 확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원대학교에 합격한 자신을 다독이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노력하자.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
다른 학생들의 결과는, 아직 잘 모른다. 추가 발표도 남아있다. 우리는, 희망을 버리며 삽질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자신이, 스스로의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일어설 여지는 있다.


살아가는 것은 얽히고 얽힌 커다란 실타래같다.
하지만, 실의 굵기가 굵을수록 실의 길이는 짧아진다. 내용 없는 삶이란 얼마나 부질없는가. 자신이 스스로를 회상했을 때, 그 삶에 단 한치의 노력도 없다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 가장 불쌍한 것은, 스스로의 삶에 노력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1년동안 더 공부하면서 나는 이런 것들을 배웠다.
그것은, 곡을 쓰거나 화성을 움직이는 법만은 아니었다. 울고 웃고, 다른 사람과 함께 공부하고 곡을 해석해가면서, 또한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학을 갈 수는 없다.
또한, 원하는 일만을 하고 살 수는 없다. 그저 노력할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 지기 위해서.
하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쩔 방도가 없구나. 힘내고, 좌절하지 말자.


스스로를 믿고, 더 잘할수 있을거라고 마음 단단히 먹으면 할수 있다고 믿어요.


1년동안 부족한 저를 이끌어주신 원장님, 부원장님.
그리고, 청음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1년여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걸 증명하겠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날.
07 학번의 입시 설명회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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